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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Martin Adams

한국학대형기획총서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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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한국학대형기획총서사업

과제명

한국 근대화의 사상적 동력 : 근대 조선과 대한민국 건국기까지의 거대 담론들

연구책임자

​황태연

주관연구기관

​동국대학교

연구수행기간

2013.05.06 ~ 2016.05.05

저서명

실학의 신화와 역설

저자

​고희탁

출판사

​공감의 힘

초록

이 책은 나의 아주 오래된 의문 가운데 하나, 즉 ‘어째서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다르게, 19세기 후반 이른바 웨스턴 임팩트에 의한 구조변동기에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게 절실한 또는 유의미한 혹은 정확한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전쟁, 독재와 고도경제성장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물론, 1980-90년대 소니나 파나소닉의 세계적 파워를 실감했던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것도 심각함이 묻어나던 의문 가운데 하나였다.
나의 동경대 유학시절, 일본의 전근대 즉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에도[江戶]시대 정치사회의식의 변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던 것도 그와 같은 의문의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의식의 변화’라는 측면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내 나름의 시각에서 탐색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성공은 그 이전 시대 즉 도쿠가와시대에 진행된 그 ‘의식의 변화’가 밑거름 역할을 한 사상적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 배양토 위에서 자라난 꽃·열매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탐색의 결과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내게는 새롭다고 여길 만한 시각, 즉 유학·유교가 ‘근대화’에 친화적인 사상자원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겠다는 시각이 생겼고, 그 이전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지평으로까지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특히 기득권세력이나 전통적 지식인층에게만 독점되던 유학이 아니라, 비기득권층이나 비지식인층에도 ‘열린’ 유학이 초래할 유학의 또 다른 가능성에 눈을 뜰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민국가’ 형성에도, ‘시민’의 탄생에도, 민주주의에도 친화적인 유학의 이미지 말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해왔던 일반적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결을 지닌 유학 이미지였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 시간이 더 흐른 뒤였지만,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번역과 소개를 시발점으로 하여 공자철학(Confucianism)이 유럽의 이른바 계몽주의 형성과 전개에 심대한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는 놀라운 사실史實에도 접하게 되었다. 내게는 또 다른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 동일하게 ‘유학·유교’라 불리워도, 정치사회적 기능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유학·유교’ 버전의 존재·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근대화’ 혹은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버전과 그에 반反하는 버전의 존재 말이다. 그리고 유럽 계몽주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유학이나 일본 도쿠가와시대 ‘의식의 변화’를 추동한 유학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유학은 ‘봉건적’이자 ‘전근대적’ 혹은 ‘반근대적’인 버전의 유학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이와 같은 유학의 ‘두 가지 버전’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이후부터, 나는 실학 관련 연구·문헌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때까지는 내게도 실학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미지, 즉 조선시대의 개혁과 희망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였는데, 그 이미지의 실제 여부를 ‘두 가지 버전의 유학’이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일반적 이미지, 즉 그런 개혁적 실학을 배척하고 외면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띠는 ‘어두운 시대’의 실상에 대한 의문도 아울러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실학 관련이든 시대사 관련이든, 내가 깊이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익숙한 일반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그와 상반相反되는 사실들과 직면해야 했다. 대체적으로 실학은 ‘그렇게’ 개혁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욱이 ‘시대’는 어둡기는커녕 오히려 이른바 ‘근대화’에 친화적인 활력으로 넘쳐났다. 개혁적인 실학과 그런 실학을 외면한 시대라는 일반적 이미지는 ‘허구’에 가깝고, 실제로는 실학이 오히려 역동적인 시대의 활력에도 못 미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었다는 점이 더 명확해질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그 결과물인 이 책 『실학의 신화와 역설』은 그런 무지에 대한 고백이자 비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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